<최근 온라인 어떤 글에서> 안상홍님의 설교와 책자의 몇 구절을 떼어 내어 이렇게 주장했습니다. (원문 그대로 옮깁니다.)—-> 그래서 이 글에 대한 본 교회의 해명 글을 정리하여 올립니다.
<이적을 해야만이 늦은비 성령을 받았다고 하는 것은 착각이다.>
<교리요람 제3장 보혜사성령은 예수께서 승천하실때에 약속하신 선물인데 누구든지 새언약을 믿고 행하는 사람에게 감동되어 역사하신다고 했습니다. 이 보혜사성령이 오순절날에 제자들에게 임한 이른비 성령이다. 즉 새언약을 믿고 행하면 늦은비성령을 받는다는 뜻이다.>
<늦은비성령의 강림16페이지 절기를 지키는자는 늦은비성령을 받게 된다.>
<성경을 기록할 때 감동되었던 성령과 화잇부인이 묵시를 볼 때 감동되었던 성령과 늦은비성령과 다른 것이 무엇이겠는가? 라고 되어 있다. 이사야선지자가 이적을 했다거나 화잇부인이 이적을 했다는 기록은 없다. 안선생님은 늦은비 성령을 필히 이적을 해야만이 늦은비성령을 받았다고 말하지 않는다.>
위 글들의 요지는 하나입니다. 새언약의 진리를 받은 지금의 상태가 곧 늦은비 성령을 받은 것이라는 주장입니다.
우리가 진리를 받아 지키는 것은 일부 진리의 성령을 받은 것입니다. 이것은 맞습니다. 그러나 성경과 안상홍님의 말씀은 진리를 받은 것과 늦은비 성령(능력의 성령)을 받는 것을 분명히 나누어 놓았습니다.
1. 인용한 설교는 “지금”과 “그때”를 나눕니다
“바로 성령이 다른 게 아니라 진리가 성령입니다. 예수님이 성령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적을 전혀 부인할게 아니죠. 이적도 때가되면 다 그렇게 할 때가 있어요.”-(안)
안상홍님께서 바로잡으신 것은 “병자 고친다고 하면 구름떼같이 밀고 들어가는” 잘못된 이적 열풍이었습니다.
- 지금: 진리를 깨닫게 하시는 성령의 역사 (“진리가 성령입니다”)
- 그때: 이적이 함께 나타나는 때 (“때가되면”)
지금과 그때를 나누신 말씀입니다. 지금이 곧 늦은비라고 하신 것이 아닙니다.
2. “같은 영”은 “같은 임하심”이 아닙니다
“성경을 기록할 때 감동되었던 성령과 화잇부인이 묵시를 볼 때 감동되었던 성령과 늦은비 성령과 다른 것이 무엇이겠는가?”-(안)
이 말씀은 성령의 근원이 같다는 뜻입니다. 근원이 같다고 해서 늦은비의 때가 이미 왔다는 뜻은 아닙니다. 안상홍님께서는 같은 성령이시지만 그 능력은 끊어지기도 했다고 하셨습니다.
“첫사랑, 곧 새 언약의 진리가 끊어지는 동시에 이른 비 성령의 능력도 끊어지게 된 것이다.”
같은 하늘의 비라도 이른 비와 늦은 비는 따로 있습니다.
“이른 비와 늦은 비를 전과 같이 내리시리라” (요엘 2:23)
3. 성령을 받은 사람을 모두 이른비·늦은비로 묶을 수 없습니다
해명은 “다른 것이 무엇이겠는가”라는 한마디로 성령을 받은 사람들을 모두 하나로 묶었습니다. 이렇게 묶으면 모세의 장로들, 다윗, 선지자들, 사도들이 받은 성령이 모두 이른비 성령, 늦은비 성령이 되어 버립니다.
성경에는 성령을 받은 사람이 많습니다.
“모세에게 임한 신을 칠십 장로에게도 임하게 하시니 신이 임하신 때에 그들이 예언을 하다가” (민 11:25)
“사무엘이 기름 뿔을 취하여 그 형제 중에서 그에게 부었더니 이 날 이후로 다윗이 여호와의 신에게 크게 감동되니라” (삼상 16:13)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니라” (벧후 1:21)
그러나 성경은 이들이 받은 성령을 한 번도 “이른 비”나 “늦은 비”라고 부르지 않았습니다.
이른비와 늦은비는 성령을 받은 사람마다 붙이는 이름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에 부어 주시는 성령의 이름입니다.
- 이른비: 베드로는 오순절에 임한 성령을 두고 “이는 곧 선지자 요엘로 말씀하신 것이니”(행 2:16)라고 했습니다.
- 늦은비: 안상홍님께서는 초막절에 임할 성령을 두고 “실상은 예수 재림하시기 직전에 나타나실 것을 예언하신 것이다”라고 하셨습니다.
만일 모세의 장로들과 다윗이 받은 성령도 이른비·늦은비라면 이렇게 됩니다.
- 이른비가 오순절보다 천 년도 훨씬 앞서 내린 것이 됩니다.
- 늦은비가 이른비보다 먼저 내린 것이 됩니다. 그러나 요엘은 “이른 비와 늦은 비”라고 하여 순서를 정했습니다.
- “성령이 아직 저희에게 계시지 아니하시더라”(요 7:39)는 말씀과 맞지 않게 됩니다. 여기서 “저희”는 예수님을 믿고 따르던 제자들입니다. 성령은 구약 시대부터 여러 사람에게 임하셨지만, 요한은 제자들이 받을 약속의 성령은 “아직”이라고 했습니다. 이른비는 그전에 성령이 임하신 일들과 구별되는, 정하신 때의 성령(능력의 성신)이었기 때문입니다.
같은 성령께서 임하셨다고 해서 모두 같은 이름으로 부를 수는 없습니다. 이른비·늦은비라는 이름은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를 따라 붙습니다.
4. 성경이 보여 주는 성령 임하심의 구분
① 때: 말씀을 받던 제자들에게도 “아직”이었습니다.
“(예수께서 아직 영광을 받지 못하신 고로 성령이 아직 저희에게 계시지 아니하시더라)” (요 7:39)
② 단계: 말씀을 받은 사람에게도 성령 내리심은 따로 있었습니다.
- 제자들은 “성령을 받으라”(요 20:22)는 말씀을 듣고도 약속하신 성령을 기다렸습니다(행 1:4~5).
- 사마리아 교인들은 말씀을 믿고 침례를 받았지만 “아직 한 사람도 성령 내리심을 받지 못하고” 있었습니다(행 8:16).
③ 대상: 모세와 70장로(민 11:17) → 선지자 개인 → “모든 육체”(욜 2:28)
④ 분량: “갑절의 영감”(왕하 2:9), “그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시느니라”(고전 12:11)
이사야나 화잇 부인에게 이적의 기록이 없는 것은 그들에게 주신 은사와 사명이 그러했다는 뜻일 뿐입니다. 그것으로 늦은비 성령의 모습을 정할 수는 없습니다.
5. 진리를 받은 것은 늦은비를 받은 것이 아닙니다
보혜사 성령이 승천 후 주신 이른비 성령이라는 데까지는 맞습니다. 그러나 해명은 거기서 <즉 새언약을 믿고 행하면 늦은비성령을 받는다>로 건너뛰었습니다. 교리요람 원문에는 “늦은비”라는 말이 없습니다.
안상홍 님께서는 「라오디게아 교회에 보내는 기별」 제25장에서 이렇게 나누셨습니다.
| 구분 | 안상홍 님의 말씀 |
|---|---|
| 진리 ≠ 능력의 성령 | “진리를 가졌노라고 하는 교인들이라 할지라도 사마리아 교인들처럼 … 능력의 성령은 받지 못하고 있다.” |
| 회복이 먼저 | “초대교회의 진리가 완전히 회복되면 오순절에 내린 성령과 같은 성령을 부어 주실 것이다.” |
| 진리는 조건 | “여호와를 아는 지식을 배워야 할 것이니 이것은 곧 늦은 비 성령받는 조건이 되는 것이다.” |
| 늦은비의 때 | “오순절에는 그 일부가 성취되었고 실상은 예수 재림하시기 직전에 나타나실 것을 예언하신 것이다.” |
“우리는 이미 진리를 다 회복했다”고 하더라도 마찬가지입니다.
- “회복되면 … 부어 주실 것이다”라고 하셨습니다. 회복은 조건이고, 부어 주심은 그 뒤에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 사도들은 예수님께 진리를 직접 받고도 기다리며 “전혀 기도에 힘쓰”다가(행 1:14), 정하신 날 오순절에 능력의 성령을 받았습니다(행 2:1~4).
진리를 가진 것은 늦은비를 받을 준비입니다. 늦은비 그 자체는 아닙니다.
6. “받게 된다”는 “받았다”가 아닙니다
“늦은비성령의 강림16페이지 절기를 지키는자는 늦은비성령을 받게 된다.”
책자 제25장도 모두 앞으로의 일로 기록했습니다.
“절기를 지키는 자에게는 늦은 비 성령을 받게 될 것이고”
“농사짓는 자는 추수하게 된다”는 말이 “농사짓는 지금 이미 추수했다”는 뜻이 아닌 것과 같습니다.
7. 자기 생각을 안상홍 님의 말씀처럼 내세웠습니다
<안선생님은 늦은비 성령을 필히 이적을 해야만이 늦은비성령을 받았다고 말하지 않는다.>
이 문장은 안상홍님의 말씀이 아닙니다. 해명한 사람의 생각입니다. 이 말을 뒷받침하는 안상홍님의 글은 제시되지 않았습니다.
안상홍 님께서 실제로 하신 말씀은 이렇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적을 전혀 부인할게 아니죠. 이적도 때가되면 다 그렇게 할 때가 있어요.” -(안)(설교 「초막절과 늦은비 성령」)
“그 때에 내가 내 신을 남종과 여종에게 부어주고 내가 이적을 하늘과 땅에 베풀리니 … 이 예언은 오순절에 일부가 성취되었다 할지라도 완전 성취는 늦은 비 성령 내리실 때를 가르치신 것이다.” (「라오디게아 교회에 보내는 기별」 제25장)
“그러면 오늘날에는 왜 그런 특별한 성령의 기사가 없는가? … 원인은 초대교회가 지키고 행하던 진리가 없기 때문이다.” (같은 책)
안상홍 님께서 바로잡으신 것은 이적만 쫓아다니는 잘못이었습니다. 그러면서도 늦은비의 때에는 이적이 함께 나타난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해명은 “이적만 쫓지 말라”는 말씀을 “이적이 없어도 지금 늦은비를 받은 것”이라는 자기 결론으로 바꾸었습니다. 그리고 그 결론을 안상홍님의 뜻인 것처럼 말했습니다. 안상홍님의 말씀은 그 말씀대로 읽어야 합니다. 자기 생각을 안상홍님의 이름으로 말해서는 안 됩니다.
8. 전도의 사명과 늦은비의 강림은 별개입니다
해명은 <늦은비 성령을 받지 않았기 때문에 전도해 봐야 소용없다고 하는 것은 시대적 착오>라고 했습니다. 맞는 말입니다. 늦은비가 아직 오지 않았다고 해서 전도할 필요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제자들도 성령을 기다리는 동안 기도하며 맡은 일을 했습니다(행 1:12~26). 기다림과 사명은 함께 갑니다. 다만 전도를 강조하려고 늦은비가 이미 왔다고 앞당길 필요는 없습니다.
9. 그 논리대로라면 누구나 이미 받은 것이 됩니다
<진리를 받았으니 늦은비를 받은 것이다>라는 논리를 따르면 이렇게 됩니다.
- 모세의 장로들과 다윗과 선지자들도 모두 늦은비를 받은 사람이 됩니다.
- 말씀을 믿고 침례를 받은 사마리아 교인들도 이미 받은 사람이 됩니다.
- 진리를 가진 제자들도 기다릴 필요가 없었습니다.
- “진리를 가졌노라고 하는 교인들이라 할지라도 … 능력의 성령은 받지 못하고 있다”는 안상홍님의 말씀이 틀린 것이 됩니다.
그러므로 틀린 것은 그 해명입니다.
맺는말
안상홍 님께서는 늦은비 성령을 이렇게 나누어 말씀하셨습니다.
- 지금: 진리를 받아 진리의 성령의 역사를 일부 받고 있습니다.
- 조건: 진리와 여호와를 아는 지식은 “늦은 비 성령받는 조건”입니다.
- 약속: 진리가 “완전히 회복되면” 성령을 부어 주시며, 늦은비는 “예수 재림하시기 직전”에 이루어집니다.
성령은 한 분이시지만, 성령을 받은 사람마다 이른비·늦은비라 부를 수는 없습니다. 진리를 받은 것은 귀한 은혜입니다. 그러나 조건을 갖춘 것을 약속을 받은 것으로 착각하면, 그 약속을 사모하며 준비하는 마음을 잃게 됩니다.
“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길이 참아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나니” (야고보서 5:7)
우리는 받은 진리를 온전히 지키며 약속하신 늦은비의 때를 사모하여 기다리는 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