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하나님 안에서 부르심을 입고 믿음의 길을 걸어갈 때, 주님은 우리를 단순히 명령에 기계적으로 따르는 종으로만 대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자녀로 삼아주셨을 뿐만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깊은 사랑과 신뢰를 바탕으로 영원히 가깝게 동행하는 ‘친구’ 같은 사이로 교제하기를 간절히 원하십니다. 오늘 설교 묵상 포스팅에서는 참된 친교의 영적 의미를 되새기며, 우리가 주님과 어떻게 영적 사귐을 나누고 형제 자매와 진정으로 연합해야 하는지 성경의 진리를 통해 심도 있게 살펴보겠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사귐으로 부르신 뜻
하나님께서 우리를 불러 모으신 궁극적인 목적은 세상적인 친목이나 이익을 도모하기 위함이 아닙니다.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고,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거룩한 영적 교제를 나누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너희를 불러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로 더불어 함께 교제케 하시는 하나님은 미쁘시도다” (고린도전서 1:9)
참된 친구 관계는 깊은 신뢰와 사랑, 그리고 숨김없는 진실함이 바탕이 되어야 유지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영혼의 구원이라는 변치 않는 영원한 목적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주 안에서의 진정한 사귐은 세상적인 만남을 넘어, 하나님의 영원한 사업과 구원의 뜻을 이루기 위해 서로 마음을 모아 협력하고 연합하는 거룩한 동역자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보고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전함은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니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함이라” (요한일서 1:3)
문을 열고 주님과 더불어 먹고 마시는 사랑의 친교
예수님은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의 마음 문을 두드리시며, 우리 삶의 가장 깊은 영역까지 들어와 가장 친밀하게 교제하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주님을 멀리서 바라보는 손님으로 대하는 것이 아니라, 늘 밤낮으로 동행하며 마음을 나누는 동반자로 모셔 들여야 합니다.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요한계시록 3:20)
이 친밀한 교제를 가능하게 하는 원동력은 바로 우리 마음속에 뜨겁게 솟아나는 ‘사랑’입니다.
주님과 우리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님을 진정으로 사랑하게 되면 예배를 드리고 주님의 뜻을 준행하는 모든 수고가 수고로 느껴지지 않고 기쁨이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죽은 나사로를 보고 눈물을 흘리시며 극진히 사랑해 주셨고, 제자 요한을 품에 안으실 만큼 친근히 대하셨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하나뿐인 목숨을 바치심으로써 우리를 향한 사랑의 확증을 친히 보여주셨습니다.
종의 멍에를 벗고 주님의 ‘친구’가 되는 영적 도리
예수님은 제자들을 향하여 이제는 종이 아닌 ‘친구’라고 불러주시며, 하늘 아버지의 거룩한 구원의 비밀을 아낌없이 다 열어주셨습니다.
“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종은 주인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라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내가 내 아버지께들은 것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였음이니라” (요한복음 15:15)
주인이 시키는 일에 억지로 따르는 종과 달리, 친구는 상대방의 뜻과 깊은 사정을 이해하고 자발적으로 그 마음에 동참합니다. 여기서 우리 주변에 올바르고 의롭게 행하는 훌륭한 친구가 있다면, 우리는 그 친구와 지속적으로 사귀고 가까워지기 위해 스스로 자신의 나쁜 성품과 어두운 행실을 고치고 그 친구의 올바른 모습을 본받으려 노력하게 됩니다. 서로 좋아하는 관심사와 선악의 기준이 완전히 다르면 결코 깊은 친구가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거룩하고 의로우신 예수님의 참된 친구가 되기 위해서는, 주님이 기뻐하시는 뜻을 우리도 기뻐하며 마귀에게 속한 악한 행실을 단호히 끊고 예수님의 의를 좇아 형제를 사랑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포도나무에 거하며 성숙한 사랑으로 맺는 열매
주님과의 온전한 친교는 지식적인 깨달음에만 머무르지 않고, 삶의 실천과 순종이라는 구체적인 행동으로 완성됩니다. 가지가 포도나무에 단단히 연결되어 있어야 수분과 영양을 공급받아 풍성한 열매를 맺듯이, 우리 역시 그리스도의 말씀 안에 굳건히 붙어 있어야 합니다.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절로 과실을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요한복음 15:4)
이 거룩한 생명의 열매는 바로 ‘계명의 준행’과 ‘성숙한 형제 사랑’을 통해 외부로 드러납니다. 아직 철이 들지 않은 어린아이는 이기적인 본성이 앞서기 때문에, 맛있는 음식이 있으면 주변 사람이나 동생을 생각하지 않고 오직 자기 입에 먼저 털어 넣기 바쁩니다. 그러나 점차 자라나 성숙해지면 “나만큼 저 사람도 배고프고 먹고 싶겠구나” 하는 배려의 마음이 생겨, 기꺼이 자신의 것을 양보하고 소중한 음식을 나누어 먹을 줄 알게 됩니다.
우리의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믿음의 철이 들지 않았을 때는 끊임없이 내 유익과 정욕만을 채우려 하지만, 영적으로 깊이 성숙하게 되면 내 욕심을 내려놓고 형제 자매의 영혼과 처지를 먼저 살피며 뜨겁게 사랑할 줄 아는 단계에 이르게 됩니다. 진리 안에서 타인을 존중하고 사랑을 행하는 성도들의 도리야말로 하나님의 참된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거하고 있음을 증명하는 증거입니다.
“부녀여 내가 이제 네게 구하노니 서로 사랑하자 이는 새 계명같이 네게 쓰는 것이 아니요 오직 처음부터 우리가 가진 것이라 또 사랑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 계명을 쫓아 행하는 것이요” (요한이서 1:5-6)
참된 친교와 연합으로 드리는 합심 기도의 능력
그리스도의 법 안에서 서로 배려하고 온전히 교제하는 성도들은 비로소 마음과 뜻이 하나(합심)가 됩니다. 주님은 이처럼 영적으로 참되게 소통하며 마음을 같이하여 드리는 간구라면, 비록 두세 사람의 지극히 적은 무리가 모였을지라도 반드시 하늘에서 들으시고 응답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진실로 다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에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며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저희를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마태복음 18:19-20)
많은 군중이 겉으로만 열심히 한자리에 모여 기도를 드린다고 해서 진정한 합심 기도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마음에 미움과 시기가 가득하여 형제와 깊이 사귀지 못하고 마음이 제각각 흩어져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이 받으시는 합심이 될 수 없습니다. 참된 기도의 응답은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을 가슴으로 느끼고 온전히 닮아, 성도 간에 진실한 영적 친교로 완벽하게 하나가 될 때 비로소 응답의 문이 열리게 됩니다.
결론 및 묵상
우리를 지극히 사랑하사 하나뿐인 생명까지 아낌없이 대속의 제물로 내어주신 예수님의 그 크신 본을 기억합시다. 주님은 우리에게 먼저 손을 내미시어 종의 굴레를 벗기시고, 하늘 나라의 비밀을 공유하는 고귀한 ‘친구’의 반열로 우리를 이끌어 주셨습니다.
이제는 나 중심의 이기적인 신앙과 고집에 사로잡혀 있던 어리석은 어린아이의 허물을 과감하게 벗어버립시다. 맹목적으로 시키는 일에만 마지못해 복종하는 종의 상태를 지나, 주님의 마음을 시원하게 해 드리는 의로운 친구가 됩시다. 날마다 말씀의 신비를 마음에 새기고 묵상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진리 안에서 형제 자매와 온전한 친교를 이룹시다. 그리하여 장차 주께서 다시 영광 중에 강림하실 때 부끄러움 없이 기쁨으로 주님을 영접하고, 저 찬란한 천국 도성에서 함께 영원한 영생의 잔치에 참예하는 복된 믿음의 친구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