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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움은 곧 살인이다: 성경으로 비춰보는 참된 사랑과 용서의 원리

우리는 일상을 살아가며 크고 작은 이유로 누군가를 미워하는 감정을 품게 됩니다. 구약 시대에는 실제적인 살인 행위가 나타났을 때 그것을 살인죄로 처벌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5장을 통해, 행위뿐만 아니라 마음속에 누군가를 미워하는 감정이 생겼다면 그것이 곧 ‘살인’이라고 말씀하시며 율법의 기준을 마음의 동기로까지 깊이 끌어올리셨습니다. 오늘 설교 요약 포스팅에서는 깊이 있는 성경 구절들을 통해 미움의 본질을 파헤치고, 원수 사랑과 참된 용서의 성경적 의미를 묵상해 보겠습니다.

1. 살인의 진짜 시작: 마음속에 싹튼 ‘미움’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 (요한일서 3:15)
성경은 형제를 미워하는 자를 가리켜 살인하는 자라고 명확히 규정합니다. 모든 범죄와 살인은 아무런 생각 없이 갑자기 행동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마음속에 싹튼 미움과 탐심이라는 감정에서부터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인류 최초의 살인자였던 가인을 보면 이를 명확히 알 수 있습니다.
“가인이 그 아우 아벨에게 고하니라 그 후 그들이 들에 있을 때에 가인이 그 아우 아벨을 쳐죽이니라” (창세기 4:8)
가인은 하나님께서 아벨의 제사만 받으신 것에 심히 분하여 안색이 변했고, 결국 그 미움을 이기지 못해 동생 아벨을 쳐 죽이고 맙니다. 아벨은 가인에게 어떠한 해도 끼친 적이 없었지만, 그저 나와 다르고 하나님께 예쁨을 받는다는 이유만으로 가인의 마음에 미움이 생겼던 것입니다. 이처럼 행동으로 옮겨지기 전, 가장 먼저 생기는 미움이라는 감정 자체가 이미 살인의 시작입니다.
2. 미움을 정당화하는 ‘명분’의 함정
우리는 누군가를 미워할 때 “저 사람이 이러이러하게 행동했기 때문에 미워할 수밖에 없다”며 자신의 감정을 합리화하려 합니다. 미움에는 항상 내 감정이 옳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한 빌미거리와 명분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모세가 구스 여자를 취하였더니 그 구스 여자를 취하였으므로 미리암과 아론이 모세를 비방하니라” (민수기 12:1)
미리암과 아론은 자신들의 형제인 모세를 비방하고 끌어내리기 위해 그가 구스 여자를 취했다는 사실을 명분으로 삼았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진짜 속마음은 모세만 하나님과 대화하며 높은 위치에 있는 것에 대한 시기 질투였습니다. 다윗의 아들 압살롬 역시 아버지를 반역하고 왕이 되려 할 때, 다윗이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취했던 흠결을 빌미 삼아 백성들의 마음을 훔쳤습니다. 노아의 아들 함도 평소 아비에게 가졌던 불만을, 노아가 술에 취해 벌거벗은 하체를 드러냈을 때 밖으로 퍼뜨리며 형제들에게 허물을 들춰내는 기회로 삼았습니다.
우리는 남보다 예뻐서, 내 말을 안 들어줘서 등 천차만별의 이유를 대며 미움을 정당화하려 하지만, 하나님 앞에서 그 어떤 미움도 정당성을 가질 수 없습니다. 이유가 무엇이든 그 마음속에 미움이 자리 잡았다면 그는 살인자일 뿐입니다.
3. 미움에 사로잡힌 자들의 모순과 비판
한 번 누군가를 미워하기로 마음먹으면, 그 사람이 어떤 착한 행동을 해도 밉게 보이게 마련입니다.
“요한이 와서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아니하매 저희가 말하기를 귀신이 들렸다 하더니 인자가 와서 먹고 마시매 말하기를 보라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요 세리와 죄인의 친구로다 하니” (마태복음 11:18-19)
유대인들은 침례 요한이 먹지 않자 귀신이 들렸다고 비방했고, 반대로 예수님께서 드시자 먹기를 탐하는 자라고 비난했습니다. 요한복음 9장에서는 날 때부터 맹인 되었던 자가 고침을 받는 놀라운 은혜의 사건이 일어났음에도, 바리새인들은 안식일에 병을 고쳤다는 꼬투리를 잡아 예수님을 죄인으로 정죄했습니다.
일관된 기준 없이 그저 내가 싫기 때문에 미워하는 것이 인간의 악한 본성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이렇게 경고하십니다.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너희의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마태복음 7:1-2)
이 말씀은 타인에게 들이대기 위한 잣대가 아니라, 내 눈 속의 들보를 먼저 돌아보라는 나 자신을 향한 엄중한 경고의 말씀입니다.
4. 원수 사랑과 참된 용서의 의미 (셀프 용서의 오류)
그렇다면 성경이 말하는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씀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일까요? 이는 무조건적인 감정적 호의를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누군가 나에게 해를 끼쳐 원수가 되었다 할지라도, 그 사람이 물에 빠져 죽어갈 때 나 몰라라 하지 않는 것, 즉 사람으로서의 마땅한 도리를 행하는 것이 사랑입니다. 저 사람이 나에게 해를 가하고 악담을 퍼부었다고 해서, 나도 똑같이 악으로 갚지 않는 것 자체가 원수를 사랑하는 십계명의 기본 선을 지키는 것입니다. 시시비비를 가리기 위해 송사를 하고 잘못을 따지는 일 자체는 사랑이 없는 것과는 별개의 문제입니다.
특히 주의해야 할 것은 이른바 **’셀프 용서’**의 오류입니다. 세상에서는 내 마음이 편해지기 위해 상대는 가만히 있는데 나 혼자 용서한다는 식의 가르침이 많지만, 성경적인 용서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형제들아 피차에 비방하지 말라 형제를 비방하는 자나 형제를 판단하는 자는 곧 율법을 비방하고 율법을 판단하는 것이라” (야고보서 4:11)
상대방은 자신이 죄를 지었다고 생각하지도 않고 용서를 구하지도 않는데, 내가 스스로 우월한 위치에 서서 “내가 너를 용서해 줄게”라고 하는 것은 성경에 어긋나는 교만입니다. 진정한 용서는 상대방이나 나 자신이 잘못을 깨닫고 회개하며 용서를 구할 때 비로소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결론 성경은 옳고 그름을 나누어 타인을 재판석에 앉히려는 우리의 본성을 향해, **‘비판하는 네가 곧 율법의 재판자가 되려느냐‘**고 꾸짖으십니다. 심판은 오직 주님께 속한 것입니다. 나를 억울하게 하는 자와 똑같이 악으로 갚지 않는 굳건한 선을 지키며, 미움이라는 살인의 덫에 빠지지 않고 온전한 형제 사랑을 이루어가는 복된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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