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믿고 의지하는 하나님은 어떠한 분이실까요? 성경은 시작과 끝이 되시는 하나님과 예수님의 본질을 올바르게 깨닫는 것이 지혜와 총명의 시작이라고 증거합니다. 오직 제공된 성경의 진리와 소스 자료만을 바탕으로, ‘알파와 오메가’라는 위대한 칭호 속에 담긴 비밀과 우리를 향한 사랑을 심도 있게 살펴보겠습니다.
이름과 칭호의 구별, 그리고 ‘알파와 오메가’
세상에는 다른 존재와 구별하기 위해 사용하는 고유한 명칭인 ‘이름’이 있고, 대상의 본질, 신분, 품성, 속성 등을 나타내기 위해 사용하는 명칭인 ‘칭호’가 있습니다. ‘알파와 오메가’는 헬라어 알파벳의 처음과 마지막 글자로서 시작과 끝을 의미하며, 이는 하나님의 영원한 속성을 나타내는 대표적인 칭호입니다.
성경은 이 알파와 오메가라는 영광스러운 칭호가 하나님과 예수님 모두에게 동일하게 선포되고 있음을 증거합니다.
“주 하나님이 가라사대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 하시더라” (요한계시록 1:8)
“내가 볼 때에 그 발 앞에 엎드러져 죽은 자 같이 되매 그가 오른손을 내게 얹고 가라사대 두려워 말라 나는 처음이요 나중이니 곧 산 자라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 (요한계시록 1:17-18)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요 시작과 끝이라” (요한계시록 22:13)
우주 만물 속에서 시작과 끝, 처음과 나중은 단 하나밖에 존재할 수 없습니다. 만약 하나님과 예수님이 완전히 분리된 별개의 존재(객체)라면 이 말씀은 성립될 수 없는 모순이 생깁니다. 따라서 이 말씀이 모순 없이 온전한 진리가 되기 위해서는 하나님과 예수님이 동일하고 동질한 한 분이셔야만 합니다. 두 분은 지혜와 형상은 다를지라도, 그 영(성령)의 본질은 같은 분이십니다.
아브라함 이전부터 스스로 계셨던 구원자
사람이 서로 처음 만나면 자신의 이름, 직업, 성격을 이야기하며 자기를 알리려 애씁니다. 그 이유는 상대방과 진정으로 친해지고 깊이 소통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도 성경을 통해 “나는 여호와라 나 외에 다른 구원자가 없다”고 자신을 끊임없이 알리셨습니다.
“나 곧 나는 여호와라 나 외에 구원자가 없느니라” (이사야 43:11)
“다른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사도행전 4:12)
구약에서는 여호와 외에 구원자가 없다고 하셨고, 신약에서는 오직 예수라는 이름 외에는 구원을 얻을 이름을 주지 않으셨다고 가르쳐 줍니다. 옛언약에서는 육신적 이스라엘의 백성들의 구원자의 이름은 여호와, 새언약에서는 영적인 이스라엘 백성의 구원자는 예수님이 되신다고 하셨습니다. 만약 예수님이 하나님과 완전히 다른 개별적인 존재라면 이 또한 엄청난 모순이 됩니다. 결국 태초에 말씀으로 천지 만물을 창조하신 말씀의 본체이자 유일한 구원자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유대인들이 “네가 아직 오십도 못 되었는데 아브라함을 보았느냐”고 비웃을 때, 자신의 본질을 직접 증거하셨습니다.
“너희 조상 아브라함은 나의 때 볼 것을 즐거워하다가 보고 기뻐하였느니라” (요한복음 8:56)
“예수께서 가라사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내가 있느니라 하시니” (요한복음 8:58)
구약 창세기 18장에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육신의 모양으로 나타나셨고, 기한이 이를 때 사라에게 아들(이삭)이 있으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약속하신 말씀대로 사라가 이삭을 잉태하게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구약 당시 사라의 몸을 통해 이삭으로 태어나 역사하셨던 분도, 신약 시대에 마리아의 몸을 통해 오신 분도 결국 처음부터 존재했던 자기 자신임을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결혼식과 무지개 예화] 언약으로 맺어진 부부 관계
우리가 결혼식을 치를 때, 남편과 아내는 하객들 앞에서 평생 도리를 다하겠다는 약속이 담긴 ‘언약서’를 읽고 그 정표로 ‘반지’를 나눠 낍니다. 반지를 볼 때마다 서로 약속한 언약을 기억하는 것처럼, 하나님과 그 백성들의 관계 역시 이처럼 약속으로 연결된 관계입니다. 비유하자면 노아가 하늘의 ‘무지개’를 보며 “다시는 홍수로 세상을 멸하지 않겠다”고 하신 하나님의 언약을 떠올리는 것과 같은 원리입니다.
구약의 여호와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시며 그들의 남편이 되어 옛 언약을 맺으셨습니다.
“이는 너를 지으신 자는 내 남편이시라 그 이름은 만군의 여호와시며 내 구속자는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시라…” (이사야 54:5)
“내가 그들의 남편이 되었어도 그들이 내 언약을 파하였음이라” (예레미야 31:32)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남편 되신 하나님의 법을 지키지 않고 언약을 파기했습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더 좋은 언약의 중보자가 되셔서 당신의 피로 ‘새 언약’을 세우시고, 우리를 다시 거룩한 아내(신부)로 삼아 주셨습니다.
“우리가 즐거워하고 크게 기뻐하여 그에게 영광을 돌리세 어린 양의 혼인 기약이 이르렀고 그 아내가 예비하였으니 그에게 허락하사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게 하셨은즉 이 세마포는 성도들의 옳은 행실로다” (요한계시록 19:7-8)
어린 양의 아내인 성도들이 입을 ‘깨끗한 세마포’는 바로 새 언약의 법을 성실하게 지키는 성도들의 옳은 행실을 뜻합니다. 남편과 아내 중 어느 한쪽이라도 약속을 깨면 관계가 지속될 수 없듯이, 우리는 하나님과 맺은 새 언약의 법을 성실히 지키며 신의를 다해야 합니다.
[빌립의 질문 예화]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옵소서
구약 이사야 선지자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여호와의 직접적인 교훈을 받을 것이라고 예언했습니다.
“내 모든 자녀는 여호와의 교훈을 받을 것이니 내 자녀는 크게 평강할 것이며” (이사야 54:13)
예수님께서는 이 구절을 인용하시며 “아버지께 듣고 배운 사람마다 내게로 오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6:45). 우리가 하늘에 올라가 직접 배울 수 없기에, 육신을 입고 오신 예수님께 나아가 그 말씀을 배우는 것이 곧 여호와의 교훈을 받는 유일한 길입니다.
그러나 제자 빌립은 눈앞에 예수님을 두고도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형상만을 보고 싶어 아버지를 보여 달라고 간구했습니다.
“빌립이 가로되 주여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옵소서 그리하면 족하겠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요한복음 14:8-9)
죄인의 몸을 입은 육신의 상태로는 천만 천사들에 둘러싸인 하나님의 찬란한 영광의 모습을 직접 보고 살 자가 아무도 없습니다. 빌립이 보고자 했던 그 아버지는 바로 눈앞에 서 계신 예수님이셨습니다. 우리는 눈에 보이는 겉모습이나 기이한 영광만을 구함으로 눈 앞에 계신 하나님을 알아보지 못하는 빌립처럼 되지 않고, 겉모양이 아닌 주님의 본질을 올바로 알아야 합니다.
결론 및 묵상
참된 지혜와 영육 간의 평안은 주님의 말씀을 올바르게 깨닫는 데서 옵니다.
“내 재물과 내 소산물에 처음 익은 열매로 여호와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내 창고가 가득히 차고 내 즙틀에 새 포도즙이 넘치리라” (잠언 3:9)
처음 익은 소산물로 여호와를 정직하게 공경하듯, 우리는 마음에 교만과 욕심을 버리고 하나님의 법을 성실히 이행해야 합니다. 에서와 같이 눈앞의 썩어질 세상의 것에 마음을 빼앗겨 망령된 길을 걷지 않기를 소망합니다.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변함없이 동일하신 알파와 오메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 언약의 진리를 마음에 온전히 새기고 영원한 하늘 유업을 넉넉히 이어받는 신실한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