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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오클레티아누스 로마 황제의 기독교 박해(303년~313년)

로마의 황제(재위 : 284~305): 달마티아의 디오클레아에서 출생. 비천(卑賤)한 데서부터 승진하여, 황제 누메리아누스의 친위 대장(親衛隊長)이 되고, 황제가 암살된 후, 248년에 군대의 추대로 제위(帝位)에 올랐다. 암살 책임자를 처형하고, 곧 구동료 막시미아누스를 부제(副帝)로 기용(起用)하여, 갈리아의 바가우데인의 반란을 진정(鎭定)케 한 후, 286년 경 정제(正帝)에 승진케 했다.  

제국을 동서로 구분하여 다스리고, 286년 자기는 동방의 정제로 취임, 갈레우스를 부제로 한 후, 또 서방에는 정제 막시미아누스, 부제 콘스탄티우스 클로루스(콘스탄티누스의 아버지)를 두어 통치케 했는데, 이로써 제국의 4분치제도(四分治制度)가 성립되었다. 수도를 니코메디아에 두고, 군사(軍事) 경제상 중요한 동방을 직할하면서, 전 제국을 통치했다.  

301년 재정상 광범한 개혁을 단행, 징세(徴税)의 신제도를 토지의 단위와 인두(人頭)의 단위에 기초하여 15년마다 조정하도록 한 후, 화폐의 혼란과 물가 앙등에 대처하여 최고 가격령을 발했는데, 후자는 효과를 보지 못했다. 또 동양풍의 의례를 채용하여 군주의 존엄(尊嚴)을 높이고, 전제 군주 정치의 실현을 계획, 황제 예배를 성행케 함과 동시에 갈레리우스의 권면을 수납하여서, 303년 기독교의 최후적인 박해를 했다. 그 해 처음으로 로마를 방문하여 치정 20년 기념제(祭)를 개최하고, 305년 막시미아누스와 함께 퇴위, 제국을 부제에게 물려준 후, 달마티아의 살로네(Salonae)에서 여생을 보냈다.   

기독교와의 관계

디오클레티아누스는 로마 제국에서 마지막이자 가장 강력하게 기독교를 박해한 황제로 알려져 있다. 303년 그는 기독교탄압을 위한 칙령을 발표하고 기독교 교회와 성물, 성전을 파괴하고 기독교인의 모임을 불허한다고 공표했다. 당시 기독교가 만연해있던 제국동방에서 저항이 일어났고 소아시아에서는 기독교인의 봉기가 일어났으나 디오클레티아누스는 단호하게 군대를 보내 진압했다. 또한 사제들과 주교들을 체포하여 감옥에 넣고 그들이 로마 신의 제의에 참석하면 풀어 주었다.

304년의 마지막 칙령에는 기독교인은 고발이 없어도 추적하여 고문할 수 있도록하였고 모든 사람이 로마신의 제의를 수행하여야 한다고 명령했고 이를 어기면 사형이나 강제노역에 처했다. 이로서 기독교도인중에는 순교자가 많이 나온 반면 배교자도 많이 나왔다. 기독교측의 자료에는 약 3,000~3,500명이 순교했다고 되어있으나 정확한 순교자의 숫자는 알 수 없다. 오히려 기독교측에서 “대박해시대”라고 불리는 시기임에도 순교자가 너무 적다고 하는 연구자들도 많다.  이러한 기독교 박해는 대략 309년까지 지속되었고 313년 콘스탄티누스 1세리키니우스밀라노 칙령으로 완전히 끝났다. 

디오클레티아누스 [Gaius aurelius Valerius Diocletianus] (인명사전, 2002.1.10, 민중서관)

*요한 계시록의 일곱교회의 예언 중  

  서머나(몰약) (AD106~313) 교회의 예언

(계2:10)     [네가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 말라 볼찌어다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너희가 십 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민14:34)   [너희가 그 땅을 탐지한 날수 사십 일의 하루를 일 년으로  환산하여 그 사십 년 간 너희가 너희의 죄악을 질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