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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다가이수스(Radagaisus)

라다가이수스(Radagaisus)

개선식 후 첫 평화를 깬 첫 대규모 침입자는 고트족의 왕으로 알려진 라다가이수스(Radagaisus)와 그가 이끄는 반달족, 수에브족, 부르군드족,쿠아드족 등 다민족으로 구성된 부대였다. 오로시우스(Orosius)의 과장된 기록이지만 20만의 대병력이* 405년 다뉴브를 건넜고, 그 중 라다가이수스의 부대는 알프스를 넘어 이탈리아로 향했다. 이들은 이탈리아를 약탈한 끝에 로마에서 멀지 않은 플로렌티아(Florentia)를 포위하여 그 곳 시민들과 수비대와 수개월 대치 중에 있었다.

이를 구원해야 할 스틸리코는 알라릭 때와 같은 병력부족이라는 고민 앞에 신음했다. 이탈리아의 위기를 당장 수습하기 위해서 다시 한 번 드무나마 멀리 퍼져있는 로마군단을 소환해야 할 판이었다. 이 즈음의 곤궁한 상황이 테오도시오스법전에 시민권을 팔아 노예, 이민족, 포로 등을 대상으로 모병하라는 칙령에 드러난다. 스틸리코는 자신과 동맹내에 많은 이민족 부대들에 의존했다. 알라릭 집안과 경쟁자이자 원수의 관계였던 사루스(Sarus)가 고트족 부대를 지휘했고, 과거 고트족의 반란에 동로마를 도왔던 훈족의 울딘(Uldin)이 원병을 이끌고 있었다.

적의 병력이 모였을 때야 스틸리코는 티키눔(Ticinum: 현 파비아Pavia)의 본영을 나왔고 포위 중에 이 소식을 들은 라다가이수스 군은 허겁지겁 인근의 가파른 언덕지인 피에솔레 (Fiesole)로 도주했다. 이제 역으로 포위된 이들은 허기와 갈증에 지쳐 속속 투항하거나 사로잡혔으며 진압 된 후 라다가이수스의 처형으로 일단락된다(406년 8월 23일). 상당수가 처형되고 그가 데려 왔던 인구 중 많은 수가 노예로 팔린 후에, 12,000명이 스틸리코의 병력에 추가되었다.

[기번- 로마제국 쇠망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