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은 A.D와 B.C를 나누는 년도 기산점이 되는 예수님의 탄생년도를 잘못 계산하였기때문이다.
우리가 나누는 A.D와 B.C 의 기준법은 그레고리교황이 6세기 경에 로마 수도원의 수도승 디오니시우스 엑시구스에게 당시 사용되던 로마식 연도법(AUC법·로마시의 설립을 원년으로하는 달력) 대신에 사용할 「서방교회를 위한 월력」을 새로 만들도록 지시하면서 만들어졌습니다.
엑시구스는「예수 탄생을 새 달력의 시점으로 하라」는 명에 의해 당시 예수의 탄생 연대로 통용되던 AUC 753년을 서기 1년으로 삼아 공표했다.(이때 이후로 A.D와 B.C를 나누게 됐습니다.)
하지만, 이후 성서학자들이 성서에 나타나는 예수의 행적들과 역사적 고증, 고고학적 발굴 결과등을 토대로 연구를 진행함에 따라 예수가 태어난 것은 AUC 753년이 아니라 AUC 749년이라는 사실이 밝혀졌고, 이에 따라 현재 대부분의 학자들은 예수 탄생연도를 서기 1년이 아닌 BC 4년으로 보게 된 겁니다.
- 디오니시우스 엑시구스 [Dionysius Exiguus, 500?~560?]
6세기 전반 로마에서 활약했다. 교회법 집성으로 유명한 주교였다. 그의 연대기적 기술 방법의 도입은 후세에 큰 영향을 끼쳤다.
‘소(小) 디오니시우스’라는 뜻이다. 신학·수학·천문학에 뛰어났다. 사도교령집(使徒敎令集) 및 니케아·콘스탄티노플·칼케돈공의회의 교령집, 시리키우스(384)로부터 아나스타시우스 2세(498)에 이르기까지의 로마 교황의 교령집을 포함한 401조의 교회법 집성에 공헌했으며, 또한 수많은 그리스어 문헌을 번역했다고 한다. 그의 연대기적(年代記的) 기술 방법의 도입은 후세에 큰 영향을 끼쳤다. 예수 그리스도 탄생의 해부터 시작되는 오늘날의 서양력은 그가 창시한 것이라는데, 현대의 학자들은 그리스도가 탄생한 해는 그보다 4년이 빠르다고 주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