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마지막
약 속 의 자 손
THE CHILDREN OF THE PROMISE
이 소책자를 쓰게 된 것은 현재 진리 안에 있는 여러분에게 약속의 자손이 무엇인지 좀더 확실하게 깨달으시고, 반역자들의 유혹에 흔들리지 않고, 진리 안에서 하나님께 영광 돌리시는 마지막 산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이 책을 쓰게 되었습니다.
현재 우리 교회 안에서는 약속의 자손이라는 즉, 구약의 모든 선지자들의 예언으로 세워진 마지막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교회라는 것을 알지 못하고 있는 분들이 더러 있어, 때로는 저마다 무엇을 깨달았다고 주장하여 반역의 행동과 당파를 지어 소란을 일으키는 일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옛적부터 참 교회 안에는 사단의 역사가 심하게 날뛴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되겠습니다.
사단도 자기를 광명한 천사로 가장한다고 하였습니다. 모세 당시에도 고라의 패역한 당파들이 일어나 모세를 대적하였고, 사도 당시에도 니골라 당파와 발람의 교훈을 쫓는 자들이 있었으며, 모세 율법을 쫓는 할례파들이 있었습니다.
그런고로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하여 여러분들이 좀더 이 마지막 교회에 대한 예언서들을 살피시고, 이 책만은 각자가 완전히 통달하여 이미 받은바 진리를 놓치지 마시고 끝까지 믿어 14만 4천 성도들의 무리에 참여하시고, 영원한 영광의 나라로 들어가시는 하나님의 마지막 약속의 자손이 되시길 바랍니다. 아 멘
저자 안 상 홍
제1장 약속의 자손
성경에는 육신의 자손과 약속의 자손이 있다. 기록된바,
「또한 아브라함의 씨가 다 그 자녀가 아니라 오직 이삭으로부터 난 자라야 네 씨라 칭하리라 하셨으니 곧 육신의 자녀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 오직 약속의 자녀가 씨로 여기심을 받느니라 약속의 말씀은 이것이라 명년 이 때에 내가 이르리니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하시니라 이뿐 아니라 또한 리브가가 우리 조상 이삭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잉태하였는데 그 자식들이 아직 나지도 아니하고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지 아니한 때에 택하심을 따라 되는 하나님의 뜻이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오직 부르시는 이에게로 말미암아 서게 하려 하사 리브가에게 이르시되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하셨나니 기록된바 내가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 하심과 같으니라」〔롬 9장 7~13절〕하였다.
다시 말하자면 약속의 자손이라는 뜻은 이삭이나 야곱이나 출생 전에 미리 예언으로 약속하셨다는 뜻이다.
이 약속에 대한 문제를 대강 연구하자면 다음과 같다.
아브라함은 85세나 되는 노인이지만 아들이 없어 근심 중에 있었다. 그래서 본처인 사라가 자기의 몸종인 하갈을 남편에게 후처로 주었는데, 그 하갈의 몸에서 하나님의 약속 없이 이스마엘을 낳았다.〔창 16장 1~16절〕
그러나 하나님의 뜻은 약속하지 않은 이스마엘을 아브라함의 후사로 정할 수 없기 때문에 14년 후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시기를「내 언약은 내가 명년 이 기한에 사라가 네게 낳을 이삭과 세우리라」〔창 17장 21절〕하시고, 그 약속대로 사라가 아들 이삭을 낳았던 것이다.〔창 21장 1~4절〕
사도 바울은 이런 역사를 들어 갈라디아 교인들에게 장차 있을 예언으로 해석하였다.〔갈 4장 21~31절〕
그런고로 출생 전에 미리 예언으로 약속한 사람을 약속의 자손이라고 하였다.〔롬 9장 7~13절, 갈 4장 28~31절〕 그리고 야곱과 에서에 대해서도 그러하였다. 이삭의 부인 리브가가 임신하였는데 태중에 쌍태가 들어 서로 싸움으로 산모가 괴로워 죽을 지경이 되어 하나님께 물어 보았다.
하나님은 리브가에게 대답하시기를 「두 국민이 네 태중에 있구나 두 민족이 네 복중에서부터 나누이리라 이 족속이 저 족속보다 강하겠고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창 25장 23절〕하시었다.
두 민족이라 함은 야곱과 에서에 대한 말씀인데 두 사람이 태에서 나오기 전에 미리 예언으로 약속하시길 「큰 자는 어린 자를(야곱) 섬기리라」고 분명하게 약속한 그 말씀이 이루어진 야곱을 약속의 자손이라고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오늘날 마지막 교회도 하나님에게 대한 육신의 자손이 있고 약속의 자손이 있는데, 구약 성경에 선지자들의 예언이 있으면 약속의 자손이 되는 것이고, 만일 구약 성경의 선지자들의 예언으로 약속하지 않았으면 현재 큰 부흥이 되어있다 하더라도 하나님에게는 구원 받지 못할 육신의 자손 밖에 안되는 것이다.
그러나 구약 성경의 선지자들이 마지막 교회에 대해 예언하고, 또 신약의 사도들이 예언해 놓았으면 그 예언이 성취되고 있는 교회가 바로 약속의 자손이 되는 것이다.
어느 때든지 구약에서부터 하나님이 예언 한바가 있고, 그 예언의 시대가 왔으면 그 시대의 선지자가 곧 약속의 자손이 되는 것이다.
혹은 생각하기를 위에 말한 예언의 시대는 이미 다 지나간 것으로 해석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물론 사도 시대에 대한 예언은 사도 시대에 예언이 성취되었다. 그러나 마지막 교회에 대한 예언이 있을 때에는 그 예언대로 마지막에 예언이 성취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사실은 마지막에 대한 예언이 더 큰 것이다. 그 이유는 오늘날 마지막에 대한 예언들이 신․구약 성경을 통해 더 많이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 마지막 선지자와 마지막 교회에 대한 약속은 말라기 선지자가 다음과 같이 예언하였다.
「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 그가 아비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이키게 하고 자녀들의 마음을 그들의 아비에게로 돌이키게 하리라」〔말 4장 5~6절〕하시었다.
이 예언은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 즉, 예수 재림의 날이 이르기 전에 선지 엘리야를 보내서 아비의 마음(하나님의 마음)을 지상에 있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돌이키게 하고 백성들의 마음을 하나님에게로 돌이키게 하는 진리를 증거하게 되는 것을 예언한 것이요, 이사야 선지자는 동방에서 한 선지자를 택할 것에 대하여 「내가 동방에서 독수리를 부르며 먼 나라에서 나의 모략을 이룰 사람을 부를 것이라 내가 말하였은즉 정녕 이룰 것이요 경영하였은즉 정녕 행하리라」〔사 46장 11절〕하시었으며, 사도 요한은 밧모섬에서 계시를 볼 때에 한 천사가 해 돋는 곳(동방)에서 마지막 인 치는 천사가 올라올 것에 대한 예언을 다음과 같이 하였다.
「또 보매 다른 천사가 살아계신 하나님의 인을 가지고 해 돋는 데로부터 올라와서 땅과 바다를 해롭게 할 권세를 얻은 네 천사를 향하여 큰 소리로 외쳐 가로되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 치기 까지 땅이나 바다나 나무나 해하지 말라 하더라」〔묵 7장 2~3절〕하였다.
이와 같이 구약으로부터 신약의 연결적으로 예언해 놓은 것이 약속의 자손이라고 하는 것이다. 오늘날까지는 모든 교회가 하나님의 백성으로 인정받고 내려왔지만, 최후 마지막인 오늘날에 와서는 엘리야의 사명 가운데 들어야 약속의 자손이 되어 기업을 받게 될 하나님의 마지막 교회가 되는 것이다.〔롬 9장 7~13절, 갈 4장 28~31절 참고〕
하나님이 약속하셨다는 문제는 참으로 귀중한 백성이다. 요한도 말라기 선지자가 예언해 놓았기 때문에 모든 선지자보다 나은 자라고 하시며 여자가 낳은 자 중에 큰 선지자라고 증언하였다.〔눅 7장 26~28절〕
제2장 남은 자만 구원을 얻으리라
기록된바 「또 이사야가 이스라엘에 관하여 외치되 이스라엘 뭇자손의 수가 비록 바다의 모래 같을찌라도 남은 자만 구원을 얻으리니 주께서 땅 위에서 그 말씀을 이루사 필하시고 끝내시리라 하셨느니라」〔롬 9장 27~28절〕하였다.
과연 오늘날 영적 이스라엘 백성 곧 예수 그리스도인들이라고 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전 세계에 그 수가 바다 모래 같이 많이 있다. 그러나 택하심을 받은 약속의 자손은, 마지막 살아 남아 변형을 입고 승천할 성도들은 오직 14만 4천 성도 밖에 안되는 것이다.〔묵 7장 2~4절〕
「이스라엘 뭇자손의 수가 비록 바다의 모래 같을찌라도 남은 자만 구원을 얻으리니」하신 말씀과 약속의 자손과 연결해서 연구해보면, 오늘날 전 세계에 바다 모래 같은 많은 교회가 다∼ 구원 받지 못하고 「남은 자」곧 약속의 자손만이 구원의 대상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옛날 엘리야가 이스라엘 백성들에 대해 하나님께 송사하기를 「주여 저희가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으며 주의 제단들을 헐어버렸고 나만 남았는데 내 목숨도 찾나이다 하니 저에게 하신 대답이 무엇이뇨 내가 나를 위하여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한 사람 칠천을 남겨 두었다 하셨으니 그런즉 이와 같이 이제도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가 있느니라」하였고, 사도 요한은 밧모섬에서 묵시를 볼 때 마지막 남은 자손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용이 여자에게 분노하여 돌아가서 그 여자의 남은 자손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로 더불어 싸우려고 바다 모래 위에 섰더라」〔묵 12장 17절〕하였다.
로마서 9장 27절의 「남은 자」나 로마서 11장 5절의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나 다 같은 예언으로서 곧 약속의 자손이라는 뜻이다.
그리고 여자의 남은 자손은 곧 하나님의 마지막 남은 자손이라는 말씀이다. 어느 때든지 미리 예언으로 약속하고 그 예언이 성취되는 그 시대 사람이 약속의 자손이 되는 동시에 성령을 따라 낳은 사람이 되는 것이다. 기록된바,
「형제들아 너희는 이삭과 같이 약속의 자녀라 그러나 그 때에 육체를 따라 난 자가 성령을 따라 난 자를 핍박한 것 같이 이제도 그러하도다」〔갈 4장 28~29절〕하였으니, 요한계시록 12장 17절의 여자의 남은 자손도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라」〔말 4장 5절〕고 약속하신 약속의 자손이 되어있기 때문에 성령을 따라 낳은 자손이 되는 것이다.
제3장 택한 백성에 대하여
혹은 생각하기를 「약속의 자손」이다 「은혜로 택하심을 받았다」하였으니 애써가며 노력하지 않아도 택하였으면 구원 받을 것이고, 택하지 않았으면 구원 받지 못할 것이 아니냐 하고 시험할 것이다.
그러나 택한 백성이라 해서 전부를 다∼ 택했다고 생각해서는 안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그 중에 하나님을 시험하는 자가 적지 않을 것이다.
택한 백성이라고 기록되어 있는 한 분명히 택한 백성이 있는 것만은 사실이나 그러나 경솔하게 내가 택함을 받았나 안받았나 하고 하나님을 시험해서는 안된다. 기록된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시험하지 말고」〔신 6장 16절〕하였으니 하나님을 시험해서는 안된다.
택함에 대해서 역사를 살펴보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먼저 택하사 이삭을 낳았고, 야곱을 택하사 이스라엘 12지파를 낳은 것 같이 마지막에도 선지 엘리야를 먼저 택하사 마지막 산 성도 14만 4천을 구성하게 하신 것이다.
그런고로 내가 택함을 받았나 안받았나 시험하기보다 먼저 진리를 연구하고, 마지막 엘리야의 사명에 들기 위하여 힘써야 할 것이며 엘리야의 가르침을 힘써 배워야 할 것이다. 주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힘쓰는 자라야 들어간다고 하셨다.
기록된바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눅 13장 24절〕 또는 「율법과 선지자는 요한의 때까지요 그 후부터는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 전파되어 사람마다 그리로 침입(侵入) 하느니라」〔눅 16장 16절〕 또는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마 11장 12절〕하시었다.
‘침입’이라는 뜻은‘힘써서 들어간다’는 뜻이고‘침노’라는 뜻은‘힘써 공격해 들어간다’는 뜻이다.
그런고로 약속은 엘리야에 대해서 약속하였고, 엘리야는 백성들을 하나님에게로 인도하면 인도 받는 사람들은 힘써 들어가기를 노력해야 될 것이다.
마지막 엘리야의 사명은 약속의 자손으로서 산 자의 무리가 되는 것이다. 주님께서는 약속의 자손을 산 자라고 하셨다. 말씀하시길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로라 하신 것을 읽지 못하였느냐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산 자의 하나님이시니라」〔마 22장 32절〕하셨다.
이 말씀은 약속으로 택한 자의 하나님이라는 뜻으로 산 자의 하나님이라고 하신 것이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 모두 다∼ 미리 택한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하신 것이다.
하나님께서 처음 아브라함을 하란에서 불러내실 때에 약속하시기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찌라」〔창 12장 1~3절〕하셨고, 이삭에 대해서는 「내 언약은 내가 명년 이 기한에 사라가 네게 낳을 이삭과 세우리라」〔창 17장 21절〕하셨고, 야곱에 대해서는 「큰 자가 어린 자(야곱)를 섬기리라」〔창 25장 23절〕하시고, 미리 약속되어 있기 때문에 그분들을 산 자라고 하신 동시에 마지막 엘리야의 사명에 들어오는 14만 4천 성도들이 산 성도가 되는 것이다.
그 이유는 마지막 엘리야를 보내신다고 약속하신 동시에 14만 4천 성도들도 요한계시록 7장에 분명하게 기록되어 약속하였기 때문이다.
옛날 엘리사도 하나님을 찾을 때에 「엘리야의 하나님 여호와는 어디 계시니이까」〔왕하 2장 14절〕하고 여호와를 부를 때에 응답을 받는 것이다.
「엘리야의 하나님」이라는 뜻은 엘리야가 산 자라는 뜻이요 약속으로 세운 마지막 엘리야의 사명이 살았다는 뜻이다.
제4장 지나간 역사는 장래 일의 그림자
침례 요한 당시에 있었던 역사는 지금 우리들에게 무엇을 보여주고 있는가?
지나간 역사는 다∼ 지나간 것이 아니라 그 모든 역사의 예언 성취는 지금 우리들 앞에 놓여 있다. 그 모든 역사는 인류의 종말인 오늘날에 나타나야 되는 것이다. 이뿐만 아니라 성경의 기록한 모든 말씀은 거의 다∼ 장래 일의 거울과 그림자가 되는 것이다.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을 알아보자면 지나간 역사의 거울을 봄으로 알게 되는 것이다. 구약의 모든 역사가 각 시대를 통해 예언이 성취되어야 한다.
기록한바 「이제 있는 것이 옛적에 이미 있었고 장래 일도 옛적에 이미 있었으니」〔전 3장 15절〕 또는 「내가 처음부터 종말을 보이고 아직 이루지 아니한 일을 옛적부터 보여 가라대 나의 모략이 설 것이라 내가 나의 모든 기뻐하는 것을 행하리라」〔사 46장 10절〕 또는 「저희에게 당한 이런 일이 거울이 되고 또한 말세를 만난 우리에게 경계로 기록하였느니라」〔고전 10장 11절〕하였다.
구약의 역사나 구약의 선지자들의 예언이 구약시대에서 일부 예언이 이루어지는 동시에 신약에 와서 완전 성취 되어야 한다. 말라기 선지자의 예언도 일부 구약의 마지막 선지자인 침례 요한에게 성취 되었지만, 실상은 신약의 마지막 선지 엘리야로 완전 예언 성취로 이루어지게 하신 것이다.
「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하신 그 크고 두려운 날은 「교만한 자와 악을 행하는 자는 다 초개 같이 그들을 살라 그 뿌리와 가지를 남기지 아니할」〔말 4장 1~6절〕때이다.
그러므로 침례 요한을 보내사 엘리야의 사명으로 예수 초림의 길을 예비한 것 같이, 마지막 때에도 엘리야를 보내사 진리에 굶주리고 허덕이는 백성들에게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여 오시는 예수 재림의 길을 예비하게 하는 것이다.
제5장 그리스도를 알아 보는 것이 복이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시길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 가로되 더러는 세례 요한, 더러는 엘리야, 어떤이는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의 하나라 하나이다 가라사대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마 16장 13~19절〕하시었다.
그 때까지 제자들이라도 예수님을 누구라는 것을 확실하게 안 사람은 없었다. 그런데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다」고 말할 때 주님은 기뻐하셨던 것이다. 그래서 「네가 복이 있도다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라」고 특명을 내리셨던 것이다. 그 후에는 마르다도 「주는 그리스도시요 세상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줄 내가 믿나이다」〔요 11장 27절〕하였고, 부활 하신 후 도마도 「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요 20장 28절〕하였다.
그러나 보통 제자들 중 누가나 글로바 같은 제자들은 예수를 한 선지자로 알고 있었다.〔눅 24장 13~20절〕 그리고 일반 백성들도 예수를 믿기는 하지만 거의 다 선지자로 알고 있었던 것이다.〔마 21장 10~11절, 요 6장 14절〕 그 외는 예수에 대해서 전혀 모르는 사람들 중에는 악한 마음으로 예수를 죽이고저 한 사람들도 많이 있었다.
예수께서 자라나신 곳 나사렛에서 안식일에 자기 규례대로 회당에 들어가사 성경 읽으시려고 서시니 이사야서를 드리매 읽으시고, 그 성경절을 해석하셨는데 영적 눈이 어두워 오히려 바른 교훈을 역경으로 생각하고 예수를 죽이고자 하였다.〔눅 4장 16~30절〕
그들이 예수를 한 선지자로만 생각하였더라도 그렇게 악한 심정은 품지 않았을 것이다.
오늘날에도 예수님은 직접 나타나시지는 않으시지만 선지자들을 보내시기 때문에 예수님이 보내시는 선지자를 알아보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이요 복 받는 길이 되는 것이다.
기록된바 「하나님의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요 6장 29절〕하시었다.
제6장 선지자들을 보내심
구약 당시에나 오늘날에나 예수님이 선지자들에게는 잘 나타나셔도 일반 백성에게는 잘 나타내시지 않으시고 그 대신 각 시대를 따라 선지자들을 보내시는 것이다.
기록하였으되 「내가 너희에게 보내고 부지런히 보낸 나의 종 선지자들의 말을 이미 듣지 아니하였거니와 너희가 만일 다시 듣지 아니하면 내가 이 집을 실로 같이 되게 하고 이 성으로 세계 열방의 저줏거리가 되게 하리라」〔렘 26장 5~6절〕하시었으며, 또는 「보라 내가 내 말을 네 입에 두었노라」〔렘 1장 9절〕하시었으며, 또는 「너희 말을 듣는 자는 곧 내 말을 듣는 것이요 너희를 저버리는 자는 곧 나를 저버리는 것이요」〔눅 10장 16절〕 또는 「나의 보낸 자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요 13장 20절〕하시었다.
그런고로 하나님은 각 시대마다 선지자들을 보내시지만 그 시대의 선지자를 알아보기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다. 그 이유는 구약 시대나 신약 시대나 선지자를 환영한 적은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렘 18장 18절, 20장 7절, 37장 14~15절, 마 11장 18~19절, 눅 4장 20~30절 비교〕
오늘날에도 하나님이 선지자를 보내시되 그 시대에 하나님의 백성들이 쉽게 알아볼 수 있도록 보내시는 것이 아니라, 암행어사와 같이 비밀로 나타나서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기 위하심이다.
그런고로 그 시대에 선지자를 알아볼 수 있다면 그에게 말할 수 없는 축복이 될 것이다.
예수님 당시에도 침례 요한을 선지자로 믿고 요한의 제자가 되었던 사람들이 그 후에는 모두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다.〔요 1장 35~42절, 행 19장 1~7절 참고〕
그와 같이 오늘날에도 마지막 선지자 엘리야의 사명에 든다면, 장차 예수 재림 하실 때 주님을 영접하게 되는 것이다. 기록한바
「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 그가 아비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이키게 하고 자녀들의 마음을 그들의 아비에게로 돌이키게 하리라」〔말 4장 5~6절〕하시었다.
아비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이키게 한다는 말씀은,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마음을 땅에 있는 자기의 백성들에게로 돌이키는 진리를 가리켜 하신 말씀이다. 기록된바 「아들은 그 아비를, 종은 그 주인을 공경하나니 내가 아비일찐대 나를 공경함이 어디 있느냐」〔말 1장 6절〕하시었다.
위의 말씀과 같이 엘리야가 와서 「아비(하늘에 계신 하나님)의 마음을 자녀(땅에 있는 백성들)에게로 돌이키게 하고 자녀들의 마음을 그들의 아비(하나님)에게로 돌이키게 하리라」하신 그대로 엘리야를 보내사 예수 재림의 길을 예비하고, 구원 받을 백성들을 마지막 진리로 인도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고로 오늘날에는 엘리야를 알아 보는 것이 제일 큰 복을 받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 이유는 오늘날 마지막 선지 엘리야의 사명이 구약과 신약을 통해 제일 큰 선지자의 사명이기 때문이다.
침례 요한은 구약의 선지자들 중에 제일 큰 선지자라고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선지자보다도 나은 자니라 기록된바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네 앞에 보내노니 그가 네 앞에서 네 길을 예비하리라 한 것이 이 사람에 대한 말씀이라」〔눅 7장 26~27절〕하셨다.
요한이 구약의 모든 선지자보다 크다고 하신 것은 예언으로 약속하였기 때문이다. 이사야나 예레미야나 에스겔 같은 선지자들은 출생 전에 예언으로 약속한 바가 없고, 예수 초림의 선지자 엘리야의 사명으로 온 요한에 대해서 말라기 3장 1절에 예언으로 약속하였기 때문에 모든 선지자보다 나은 자라고 하신 것이다.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요한보다 큰 이가 없도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저보다 크니라」〔눅 7장 26~28절〕하셨다.
예수께서 요한을 「선지자보다도 나은 자니라」 또는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요한보다 큰 이가 없도다」하신 말씀은, 구약시대의 선지자들이 많이 있었지만 그 선지자들이 출생하기 전에 성경에다 예언되어 있는 선지자는 요한 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저보다 크니라」하신 말씀은, 은혜의 천국인 신약에 와서는 극히 작은 성도라도 저보다 큰 자로 인정 받게 되는 것이다.
그런로고 신약의 마지막 선지자 엘리야에 대하여 어떻게 평가해야 되겠는가?
이것은 마지막 엘리야에 대한 문제를 완전히 깨달은 분들이라야 확실하게 알 것이다. 하나님은 각 시대마다 선지자를 보내시며 그 선지자의 말을 신뢰(信賴)하라고 하였다.
기록한바 「유다와 예루살렘 거민들아 내 말을 들을지어다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신뢰하라 그리하면 견고히 서리라 그 선지자를 신뢰하라 그리하면 형통하리라」〔대하 20장 20절〕하였다.
제7장 신약의 선지자
혹은 말하기를 침례 요한 이후로는 선지자가 없다고 한다. 이유는 「율법과 선지자는 요한의 때까지요 그 후부터는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 전파되어 사람마다 그리로 침입하느니라」〔눅 16장 16~17절〕하신 이 말씀을 따라 요한 이후로는 선지자가 없다고 주장한다. 그와 같이 생각하게 되는 것은 성경의 모든 예언의 말씀을 온전히 깨닫지 못하고 단편적으로 해석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수께서 하신 말씀은 옛적 모세 때로부터 내려오는 모든 선지자와 침례 요한까지는 다∼ 그리스도를 증거하였기 때문에, 만일 요한 이후에도 선지자가 있다고 하게 되면 예수님 당신이 그리스도로 인정 받지 못하게 되는 까닭이다.
그런고로 「율법과 선지자는 요한의 때까지요」하신 예수님의 말씀은 메시야 즉, 예수 초림에 관해서 증거한 선지자가 요한 까지라는 말씀이다.
요한 이후에는 예수 재림을 증거하는 복음 선지자가 있는 것이다. 12사도로부터 시작하여 편지서나 복음서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을 예언하는 사람들은 다 복음 선지자가 되는 것이다.
요한이 죽은 후 신약 시대에 와서도 선지자들이 많이 있었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한 선지자 아가보라 하는 이가 유대로부터 내려와」〔행 21장 10절〕 또는 「그 때에 선지자들이 예루살렘에서 안디옥에 이르니」〔행 11장 27절〕 또는 「안디옥 교회에 선지자들과 교사들이 있으니」〔행 13장 1절〕 또는 「유다와 실라도 선지자라」〔행 15장 32절〕하였다.
복음 시대 와서는 구약 시대보다 더 많은 선지자들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혹은 말하기를 사도 당시에 선지자라고 한 것은 오늘날 목사들을 가르킨 것이 아니냐?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사도 당시에도 목사는 별도로 기록되어 있다.
「그가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 전하는 자로, 혹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엡 4장 11절〕라고 분명히 목사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선지자는 사도 다음으로 적혀 있다. 「하나님이 교회 중에 몇을 세우셨으니 첫째는 사도요 둘째는 선지자요」〔고전 12장 28~30절〕이런 순서로 분명하게 「둘째는 선지자」라고 기록되어 있다.
사도 시대나 오늘 시대나 같은 복음 시대에, 오늘날 이라고 해서 선지자가 없어서야 되겠는가? 오늘날에도 반드시 선지자가 있어야 한다. 어느 시대든지 선지자가 없을 때에는 참 진리도 없는 것이다.
침례 요한은 예수 초림의 기별을 예루살렘에 보낸 것 같이 마지막 엘리야의 사명도 예수 재림의 길을 예비하라는 마지막 경고의 기별을 보내사, 사도 시대에 있었던 초기의 교리와 신앙심을 재부흥 시킴으로 무너진 성전을 완전히 복구하게 되는 것이다.
제8장 선지 엘리야를 보내리라
말라기 선지자는 장차 이즈러지고 파괴된 율례와 법도를 복구함으로 구원의 주를 맞이하게 될 것을 보았던 것이다.
「너희는 내가 호렙에서 온 이스라엘을 위하여 내 종 모세에게 명한 법 곧 율례와 법도를 기억하라 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라」〔말 4장 4~5절〕하시었다.
혹은 위에 말한 예언이 예수 초림 당시에 있었던 침례 요한을 가리킨 예언이라고 하여 말세에 나타나야 할 엘리야에 대해서는 더 이상 연구할 생각조차도 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침례 요한은 모세에게 명한 법 곧 율례와 법도를 강조한 적이 없고, 다만 침례로써 예수 초림을 맞이하기 위하여 회개의 침례를 베풀어 예수 초림의 길을 열어 놓았던 것이다.
그러므로 말라기 4장의 예언은 마지막 예수 재림을 영접할 준비로서, 모세에게 명한 율례와 법도로써 정결함을 받을 수 있는 진리를 선포할 마지막 엘리야의 사명이 나타나야 한다는 뜻이다.
혹은 모세의 명한 법이라고 해서 우리가 구약 모세법을 그대로 지키라는 모세 율법주의자들로 생각하기 쉬우나, 구약의 예언이 신약에 와서는 새 언약의 율례와 법도로 변경되었기 때문에 구약 선지자는 「모세에게 명한 법」이라고 기록하였지만, 신약에 와서는 그 해석을 예수님이 가르치신 새 언약으로 해석해야 한다. 그 이유는 율법이 변역되었기 때문이다.〔히 7장 12절〕
마지막 엘리야의 사명은 극렬한 풀무불 같은 날이 그들을 살라 그 뿌리와 가지를 남기지 아니할 때에〔말 4장 1절〕 교만한 자와 악을 행하는 자는 다 초개와 같이 그들을 살라 그 뿌리와 가지를 남기지 아니하실 때에 보내시는 기별이다.
예수님께서 침례 요한에 대해서 엘리야라고 말씀하셨지만〔마 11장 9~14절, 17장 10~13절〕 말라기 4장 5절을 들어 증거하신 적은 한 번도 없고, 다만 말라기 3장 1절만 가지고 증거하신 것 뿐이다.〔마 11장 10절, 막 1장 2절, 눅 7장 27절, 말 3장 1~5절 비교〕
과연 말라기 3장 1~5절까지 자세히 보면, 침례 요한과 예수 초림에 대한 예언이 더욱 분명한 것이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보내리니 그가 내 앞에 길을 예비할 것이요 또 너희의 구하는바 주가 홀연히 그 전에 임하리니 그는 금을 연단하는 자의 불과 표백하는 자의 잿물과 같을 것이라 그가 은을 연단하여 깨끗케 하는 자 같이 앉아서 레위 자손을 깨끗케 하되 금, 은 같이 그들을 연단하리니 그들이 의로운 제물을 나 여호와께 드릴 것이라」〔말 3장 1~3절〕하시었다.
이 예언의 말씀과 같이 침례 요한이 와서 예수님을 메시야로 증거하였고, 예수님은 제사장들이 알지 못하는 순간에 저희들이 구하는바 주가 홀연히 그 전에 임하시고 날마다 그들을 가르치기도 하셨다.〔요 7장 14~29절〕
그러므로 말라기 4장의 예언과 3장의 예언이 다∼ 같은 엘리야의 사명에 대한 예언이지만, 4장의 예언과 3장의 예언이 성취되는 시대가 각각 다른 것이다. 그러므로 말라기 3장은 예수 초림의 길을 예비하러 보내시는 엘리야의 사명이다.
그리고 마지막 엘리야의 사명은 살아서 주를 영접하게 되어야 한다. 그 이유는 옛적 실지 엘리야가 살아서 승천하였기 때문에〔왕하 2장 11절〕 살아서 주님 재림하실 때 변형을 입고 승천하게 되어야 마지막 엘리야의 사명이다.〔고전 15장 52~53절, 살전 4장 15~18절 비교〕
엘리야를 포함한 14만 4천 성도들은 살아서 변형을 입고 주를 영접하게 되는 것이다. 침례 요한도 엘리야의 사명이기 때문에 살아서 예수 초림을 영접하였던 것이다.
제9장 선지자를 아는 것이 구원의 길
노아 당시만 하더라도 노아가 오랫동안 방주를 짓는 동안 홍수의 멸망을 면하라고 외쳤지만, 그들은 노아를 선지자로 믿지 않고 오히려 노아가 노망 든 사람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그들은 모두 멸망하고 말았다.〔창 6장, 7장 참조〕
그리고 예레미야 당시에도 백성들이 예레미야를 선지자인줄 생각 못했기 때문에, 바른 말을 하는 예레미야를 욕하고 조롱하고 때리고 하다가 다∼ 멸망하고 말았다.
기록된바 「오라 우리가 꾀를 내어 예레미야를 치자」〔렘 18장 18절〕하였으며, 「예레미야를 잡아 방백들에게로 끌고 가매 방백들이 노하여 예레미야를 때려서 서기관 요나단의 집에 가두었으니」〔렘 37장 14~15절〕하였다.
만일 그 당시에 예레미야를 선지자로 믿었더라면 그 나라는 멸망하지 않고 다 구원을 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선지자를 멸시함으로 그들이 멸시를 받았고 멸망하였다.
그러나 예레미야를 선지자로 인정한 사람들은 혹시 포로로 잡혀갔을지라도 선지자의 말을 믿고 행하므로 구원을 받았다. 다니엘과 다니엘의 친구들은 예레미야의 서책을 보고, 믿고, 행하므로 구원을 받았다.〔단 9장 1~2절 참고, 렘 27장 8~17절 비교〕
그리고 요나 선지자 당시에도 니느웨 사람들이 요나가 선지자가 아니라고 생각했더라면 그들은 다 멸망하고 말았을 것이다. 그러나 니느웨 사람들은 요나의 말을 듣고 회개함으로 멸망을 면했다.〔욘 3장 1~10절〕
옛날 엘리야 당시에 아하시야 왕이 50부장에게 명령을 내려 엘리야를 잡아오라고 하므로 50부장이 50인을 인솔해 가지고 엘리야에게 갔으나, 엘리야의 저주로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50부장과 50인을 모두 살라 죽인 것이다. 두 번이나 거듭 죽이고 난 후에 세 번째는 다른 50부장과 50인이 꿇어 엎드려 간구하여 자기들의 생명을 구원해 달라고 애원했을 때, 여호와의 명령이 내림으로 엘리야가 그들과 함께 내려가서 그 50부장과 50인이 무사히 살아난 것이다.〔왕하 1장 8~16절〕
엘리사 당시에도 젊은 청년들이 엘리사를 조롱하다가 암콤 두 마리가 나와 청년 42명을 찢어 죽인 일이 있다.〔왕하 2장 23~24절〕
이런 역사를 우리가 연구할 때에 엘리야나 엘리사가 저주해서 그들이 죽었다기보다, 마지막 때에는 선지자를 업수히 여기면 자연 저주를 받아 멸망하는 것을 알려주고 있는 것이다.〔창 12장 3절 참고〕
그러므로 하나님은 각 시대마다 선지자들을 보내시고 그 선지자들의 말을 들어야 산다고 하시었다.
기록한바 「내가 너희에게 보내고 부지런히 보낸 나의 종 선지자들의 말을 이미 듣지 아니하였거니와 너희가 만일 다시 듣지 아니하면 내가 이 집을 실로 같이 되게 하고 이 성으로 세계 열방의 저줏거리가 되게 하리라 하셨다 하라」〔렘 26장 5~6절〕하신 말씀을 자세히 연구해보면, 지금까지 내가 보낸 선지자들의 말을 듣지 않았지만 지금까지는 용서해준다, 그러나 ‘만일 다시 듣지 아니하면’ 다시 용서할 수 없다는 말씀인데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 …… 돌이키지 아니하면 두렵건대 내가 와서 저주로 그 땅을 칠까 하노라 하시니라」〔말 4장 5~6절〕하시었다.
마지막으로 보내는 내 종의 말을 듣지 아니하면 그 때에는 마지막 재앙으로 「이 집을 실로 같이 되게 하고 이 성으로 세계 열방의 저줏거리가 되게 하리라」하시었다. 「이 집을 실로같이 되게 하고」라는 뜻은, 실로에 엘리라는 한 제사장이 있었는데 그의 아들들이 믿지 않고, 선지자인 엘리의 말을 순종하지 않고, 성물을 더럽히다가 그 집이 다 멸망하고 말았다.〔삼상 2장 12절, 24~25절, 4장 11절~18절〕
그와 같이 현재까지 잘 믿어왔을지라도 만일 마지막 선지 엘리야의 말을 다시 듣지 아니하면 「이 집을 실로와 같이 되게 하고 이 성으로 세계 열방의 저줏거리가 되게 하리라」고 하셨다. 그런고로 말세를 당한 오늘날에는 마지막 선지 엘리야를 먼저 알아보는 것이 가장 중요한 문제가 되는 것이다.
기록한바 「주 여호와께서는 자기의 비밀을 그 종 선지자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고는 결코 행하심이 없으시리라」〔암 3장 7~8절〕하셨고, 또는 「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 그가 아비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이키게 하고 자녀들의 마음을 그들의 아비에게로 돌이키게 하리라 돌이키지 아니하면(선지 엘리야의 말을 듣지 아니하면) 두렵건대 내가 와서 저주로 그 땅을 칠까 하노라」〔말 4장 5~6절〕고 약속과 경고의 말씀을 주신 것이다.
「유다와 예루살렘 거민들아 내 말을 들을지어다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신뢰(信賴)하라 그리하면 견고히 서리라 그 선지자를 신뢰하라
그리하면 형통하리라」〔대하 20장 20절〕
아 멘
| 하나님의 마지막
약속의 자손 |
| 발행 : 서기 1976년 3월 일 초판 발행
서기 2007년 9월 4일 재판 발행 |
| 발행자 : 하나님의 교회
저 자 : 안 상 홍 인쇄처 : 천우문예사 |
| [비매품] |
새언약
유월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