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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스탄티누스 1세 (AD321년 일요일 휴업령, AD325년 니케아 공의회에서 유월절 폐지)
작성자 : 약속의 자손  작성일자 : 2015년 06월 03일  최종수정일 : 2019년 01월 07일

고대 로마 황제(재위 306∼337). 디오클레티아누스의 황제 퇴위 후 로마 제국의 혼란을 수습하고 로마 제국을 재통일시켰으며, 로마제국의 수도를 콘스탄티노폴리스로 옮겼다. 그리고 밀라노 칙령으로 그리스도교 신앙을 공인한 황제로서도 유명하다.

 

  출생-사망 274.2.27 ~ 337.5.22 국적/왕조 고대 로마 재위기간 306년 ~ 337년 본명 Flavius Valerius Constantinus 별칭 콘스탄티누스 대제  

 

 

활동분야 정치 목차 부제 콘스탄티우스 클로루스의 아들로 출생 사두정치의 청산과 로마제국의 단독 지배 밀리노 칙령과 새로운 제국의 수도 비잔티움 불행한 가족사 부제 콘스탄티우스 클로루스의 아들로 출생 이름은 플라비우스 발레리우스 콘스탄티누스(Flavius Valerius Constantinus)이다. 로마제국 황제가 된 이후 콘스탄티누스 대제(大帝) 또는 콘스탄틴 1세라고도 불렸다. 아버지 콘스탄티누스 클로루스 1세는 동로마제국(비잔티움제국)의 부제(부황제)었고 어머니 헬레나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다. 하지만 헬레나는 신분이 미천한 선술집 딸이었다. 아버지 콘스탄티우스는 헬레나와 헤어지고 막시미아누스의 딸 테오도라와 재혼하였고 이복동생 2명이 있었다.  

그는 생모의 미천한 신분 때문에 정치적 입지에 불리했고 그때문에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를 따라 갈레리우스의 페르시아제국 원정에 참가하였는데 적에게 생포되어 볼모가 되었다. 하지만 아버지를 따라 스코틀랜드에서 일어난 반란을 진압한다는 이유로 풀려났다. 306년 그곳에서 아버지가 갑자기 사망하자 아우구스투스(황제)로 추대되었다. 하지만 당시 로마를 지배하였던 정치체제는 4명의 정제와 부제가 각자의 영역을 통치하는 사두정치체제였다. 콘스탄티누스는 황제로 추대되었지만 적법한 황제로 인정받지 못했다.  

 

 

사두정치의 청산과 로마제국의 단독 지배 젊은 콘스탄티누스는 연이어 게르만족과 프랑크족을 상대로 한 전쟁에서 승리하면서 게르마니아와 갈리아 땅의 로마영토를 지켰다. 그가 무자비한 무력 통치로 로마제국의 라인강 방어선을 지켜냈고 강력하고 무자비한 무력으로 로마 정계에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로마에서는 정통파 황제를 자칭하고 로마시(市)를 근거지로 삼고 있던 막시미아누스의 아들 막센티우스(Maxentius)와 밀비우스 다리에서 일전을 벌여 격퇴하였다. 로마로 돌아온 312년에야 원로원으로부터 정식으로 황제 지위를 인정받았고 위대한 인물이라는 뜻의 '막시무스(Maximus)'라는 호칭을 받았는데 그의 나이 불과 24세였다. 313년부터 로마제국 동부를 차지한 황제 리키니우스(Valerius Licinianus Licinius,270~325)와 동맹을 맺고. 여동생을 그에게 정략결혼 시켰다. 이로써 로마제국은 서로마의 콘스탄티누스, 동로마의 리키니우스 지배체제가 확립되었다. 하지만 양쪽은 로마제국의 패권을 차지하기 위해 서로 대립하며 전쟁을 벌였고 323년 고트족의 침입을 막아낸 324년, 두 황제는 로마제국의 지배를 두고 마지막 전투를 벌였다. 콘스탄티누스는 육지와 해상에서 벌어진 전투를 모두 승리하여 리키니우스를 격파하였고 제국을 통일하여 단독 지배자가 되었다.  

 

밀리노 칙령과 새로운 제국의 수도 비잔티움 원래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태양신을 숭배하였으나 로마의 다신교 전통에 따라 기독교를 인정하였다. 313년 밀라노에서 리키니우스와 함께 밀라노 칙령(勅令)을 공포하였으며 기독교를 로마제국의 한 종교로 인정하였다.  

 

당시까지 전국적으로 벌어지고 있던 기독교 박해를 중지시키고 교회의 사법권 ·재산권 등을 우대하였다. 또한 북아프리카 도나투스파의 분파(分派) 문제도 조정하였으며, 325년 니케아에서 종교회의를 개최하는 등 교회 내의 분쟁 ·교리(敎理) 논쟁에도 적극적으로 관여하였다. 한편 디오클레티아누스가 정한 통치 방식을 계승 발전시켜, 문무(文武) 관직의 기능을 완전히 분리하였고, 황제고문회의의 권한을 강화하여 중요한 정치에 관여시켰으며, 황제를 정상으로 하는 계급적 관료제도를 완비하였다.  

 

리키니우스를 격파하고 서부와 동부를 통일한 다음 제국의 수도를 비잔티움으로 정했다. 새로운 도시를 건설하여 콘스탄티노폴리스(콘스탄티노플)라고 명명하였다(330). [*콘슨탄티누스 황제는 서로마를 로마교황에게 모든 권을 넘기고 자기자신은 동로마에 황제가 되었다] 그는 군인 ·통치자 ·입법자로서 제1급의 인물로 꼽히고, 가이우스 디오클레티아누스와 더불어 로마 제국의 재건자로서 높이 평가되고 있다.  (두산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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