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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롯 대왕
작성자 : 약속의 자손  작성일자 : 2016년 05월 20일  최종수정일 : 2019년 01월 07일

 


 

유대의 왕

헤롯의 아버지는 이도메네아의 안티파트로스, 어머니는 나바테아 왕국의 페트라의 공주 키프로스로 헤롯은 이들 사이에서 태어난 둘째 아들이며, 그의 가문은 이도메네아의 부유하고 유력한 가문이었다. 이도메네아(이두매, 에돔)는 유대 남쪽의 지역이며, 마카베오 가문의 요한 히르카우스에 의해 정복당한 후 유대교로 개종했다. 한글성서에서는 이도메네아 지방을 이두매(개역한글판, 개역개정판, 표준새번역)또는 에돔(공동번역성서)으로 번역했는데 그 이유는 “에돔”을 헬라어로 “이두매”라고 하기 때문이다. 영어 성서에서는 이두메아(Idumea, NIV와 NASB), 이두마에아(Idumaea, KJV)라고 한다. 

 

따라서 헤롯은 유대인이 아니라, 에돔에서 태어난 외국인이었고, 이는 유대 사람들이 헤롯을 싫어하는 원인이 되었다. 그래서 헤롯은 유대 사람들의 마음을 얻고자, 솔로몬 왕 시대의 영광이 담긴 예루살렘 성전을 다시 세우고, 로마 군인들이 함부로 드나들지 못하도록 하는 유대교 우대정책과 수도시설 개선사업을 실시했다.

 

안티파트로스는 폼페이우스카시우스와 같은 로마의 유력자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기원전 47년 유대의 지방행정관으로 임명되었고 25살이던 아들 헤롯을 갈릴래아의 총독으로 임명했다.

기원전 43년 아버지 안티파트로스가 의문의 독살을 당하자 그는 암살자를 처형하고 돌아와 당시 명목상 유대의 왕가였던 하스몬 왕조의 공주 마리암의 청혼을 받았다. 당시 마리암은 아직 10대였으나 헤로데는 첫 번째 부인인 도리스와 3살 난 아들 안티파트로스(헤롯의 아버지의 이름과 같음)를 버리고 마리암과 결혼하여 전통적인 유대교 제사장(사제) 가문과 결합하였다.

 

기원전 40년 하스몬 왕조의 안티고노스파르티아가 유대를 침공하자 그는 로마로 도망쳤고 거기서 로마 원로원으로부터 “유대의 왕”의 칭호를 받았고 기원전 37년 유대로 돌아와 안티고노스를 이기고 집권한 이래 34년간 유대의 왕으로 다스렸다.

 

마르쿠스 안토니우스옥타비아누스 사이의 내전 당시 헤롯은 안토니우스를 지원했으나 나중에 옥타비아누스가 승리하자 로도스 섬에 있던 옥타비아누스를 만나 충성을 맹세하고 “유대의 왕”의 지위를 다시 한 번 인정받았다.

 

요세푸스에 따르면, 헤롯은 마리암을 깊이 사랑하는 한편 또 질투에 눈이 멀어 그녀를 간통죄로 처형했는데, 여기에 마리암의 동생인 살로메와 친어머니인 알렉산드라가 개입하였다고 한다. 마리암의 처형 이후 알렉산드라는 헤롯이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주장하며 자신을 여왕으로 선포했는데 결국 실패하고 헤롯은 그녀를 재판없이 죽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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